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1년식 경기관총 (문단 편집) == 문제점 == 11년식 경기관총은 1922년부터 1941년까지 29,000정이 생산되었으며, 일본 국내에서 진행된 테스트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기관총이라는 평가를 얻었고, [[관동군]]이 대륙에서 일으킨 [[중일전쟁]]에서도 주력 기관총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급탄기는 이물질 유입이 쉬운 구조인 데다가 간단한 가죽으로 된 탄창 덮개마저도 개발과 보급이 안 된 탓에 전투시에 내부에 파편이나 먼지, 진흙등이 달라붙기 쉬웠다. 게다가 일본의 낮은 공업 능력 탓에 노리쇠와 약실의 공차가 커서 탄걸림을 방지하기 위해 총 본체에 부착된 윤활유 공급장치와 솔을 써서 탄마다 일일이 기름칠을 해 줘야 했다. 취약한 급탄 구조 자체는 개량하지 않고 땜질 처방을 한 꼴이다.[* 사실 [[슈바르츠로제 기관총]]이나 일본군의 기관총 체계의 근간이 된 [[호치키스 기관총]] 같은 초기 기관총들은 급탄 불량을 막기 위해 탄피에 기름칠을 하거나 기름을 뿌려주는 식의 윤활유 공급장치를 가진 경우가 많았고, 난부는 상술한 3년식 기관총이나 7.7×58mm 개량판인 [[92식 중기관총]]을 개발하면서 이 관행을 그대로 따라했다고도 볼 수 있다.] 관련 문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 기관총은 기껏해야 몇 발만 쏘면 고장난다"는 불평 불만은 규격에 맞춰 대량 생산된 부품을 그냥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라 숙련공들이 규격에 잘 맞지 않는 부품들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튜닝"해줘야 했던 당대의 일본 총기 공업의 낮은 정밀 가공 수준[* 자동화기인 기관총뿐만 아니라 [[볼트액션]]식 소총인 [[38식 소총]]끼리도 서로 부품 호환이 잘 되지 않았을 정도였다.]에서 비롯된 측면이 큰데, 특히 서구 열강에 비해 찢어지거나 깨지기 쉬운 얇은 탄피를 가진 [[6.5mm|6.5×50mmSR]]탄을 쓰는 11년식 경기관총의 경우는 탄피 배출 장치나 복잡한 구조의 급탄기가 총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탓에 외부에서 침입한 먼지나 모래가 탄피나 가동 부분에 엉겨붙어 탄피 파손이나 송탄 불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몇십 발 쏜 다음 먼지 때문에 작동 불량, 그래서 기름칠을 하면 기름에 먼지가 더 잘 엉겨붙어 작동 불량이라는 안습한 상황이 속출했고, 이것은 시도 때도 없이 흙먼지가 휘날리는 중국 대륙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 (전투 사격시에 210발 당 1발 꼴로 탄이 걸렸다는 보고도 있다.)[* 참고로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대에서 싸우던 [[이탈리아군]]의 경기관총 [[브레다 M30]]도 탄창식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문제에 시달렸다.] 작동 불량 문제는 결함론으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일본 육군은 급탄기를 포기하고 착탈식 탄창을 쓰는 후속 모델인 [[96/99식 경기관총|96식 경기관총]]의 개발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같은 38년식 소총용 실포를 쓰는 [[96/99식 경기관총|96식 경기관총]]에서도 작동 불량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38년식 소총용 실포의 장약량을 소량 줄이고, 탄피 기부의 테두리(rim)가 탄피 직경보다 조금 튀어나온 하프림드(half-rimmed)에서 탄피 기부의 돌출 테두리를 없앤 림리스(rimless) 실탄인 '''[[96/99식 경기관총#s-3|G탄]]'''[* G는 장약을 감소시킨 실탄을 뜻하는 감장탄(減装彈)의 일본어 발음인 겐소우단(Gensoudan)의 알파벳 머리 글자를 딴 것이다.]을 개발해서 96식 경기관총용으로 배포함으로써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 시험 삼아 11년식 경기관총에도 G탄을 써 봤더니 탄걸림 현상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었고, 그 결과 1941년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 심각한 무기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 육군은 구식화되어 예비 물자로 비축되어 있던 11년식 경기관총을 G탄과 함께 다시 전선에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JA_soldiers_invaded_Henan.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3a81f4494af7c633df96371530f5b0cf6fa3341bff820b738a28b1bad735ec39.jpg|width=100%]]}}} || || [[중일전쟁]] 당시 [[허난성]]에서 사용된 11년식 기관총 [[https://ja.wikipedia.org/wiki/%E5%8D%81%E4%B8%80%E5%B9%B4%E5%BC%8F%E8%BB%BD%E6%A9%9F%E9%96%A2%E9%8A%83#/media/%E3%83%95%E3%82%A1%E3%82%A4%E3%83%AB:IJA_soldiers_invaded_Henan.jpg|출처]][* 기관총을 자세히 보면 기름통이 보인다.] || Vz.26을 노획한 [[일본군]] 병사들.[* 오른쪽에서 두번째 병사가 든 총기는 [[M1918 브라우닝]]의 수출형인 R75다.] || 반면 국민당군은 탄창을 사용하는 데다 신속한 총열 교환이 가능한 선진적인 [[Vz.26]]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 일본군 기관총 사수들은 국민당군의 Vz.26을 '무고장 기관총'이라고 부르며 노획한 후에 요긴하게 써먹었다. 이후 11년식을 기반으로 Vz.26을 많이 참고해 개발한 [[96/99식 경기관총]]을 도입하게 된다. 하지만 11년식의 공차 문제는 96식까지 이어져셔 여전히 윤활유를 칠해야 했고, 이 문제는 99식에 와서야 해결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공업 생산 능력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에 11식 경기관총은 96식, 99식 경기관총이 등장하던 시점에서도 퇴역하지 못하고 [[태평양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계속 사용되게 된다. 이후 한반도에 남겨진 물자들은 [[6.25 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이 사용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에 의해 일본군이 무장해제되면서 11식 경기관총은 미국 민간에 흘러 들어갔는데, 장전 방식과 총소리가 특이하여 클래식 건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전설급 무기 취급 받는다. 돈주고 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정작 생산국이었던 일본에서는 총이 남아있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